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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N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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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부터 1995년까지, 위베르 드 지방시는 전세계에 이름을 날린 우아하고 세련된 패션 디자이너였다. 창업 이래 지금까지도 지방시는 세련된 정제미와 화려함을 지닌 최고의 브랜드로 지방시의 스타일은 타인과 구분되는 매력, 즉 최상의 우아함, 신중함에 순수함과 고급스러움의 만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27년 프랑스 보베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는 원래 법학을 공부하던 법학도였다. 그러나 가족의 바램과는 달리 그는 직물 공장의 감독관이었던 조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패션에의 관심을 떨쳐 버릴 수 없어 결국 전공을 미술로 바꾼다. 몇몇 부티크를 거쳐며 상당 기간 동안 로버트 피겟으로부터 패션 수업을 받고 엘자 스키피아렐리의 부티크를 맡는 등 꾸준히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 후 지방시는 1952년 2월 2일 자신의 이름을 딴 GIVENCHY House의 문을 열고 컬렉션을 개최하게 된다. 이 컬렉션의 대대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지방시는 디자이너로서의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된다. 지방시 스타일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라인과 최고급의 패브릭을 사용한 지극히 매혹적인 우아함과 신중하고 순수함이 느껴지는 매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대표된다. 귀족 출신답게 격조 높은 패션감각을 구사한 그의 작품은 전세계 귀족과 유명 인사들의 인기를 얻게 된다. 1956년, 지방시는 맞춤복에 이어 기성복과 남성복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는 기성복을 시중에 내놓은 오트 쿠튀르 업계 최초의 디자이너가 된 것으로 이 기성복 라인의 명칭은 지방시 위니베르시테다.


여성을 볼 때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부분은 다리이고, 최상으로 꼽는 것은 성실이라고 지방시는 말한다. 의상 디자인에 관한 그의 신조는 유명한 윈저 공작부인의 말처럼 지나치게 마르지도 않고 지나치게 살쪄보이지도 않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지방시는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저녁 생 제르맹 근처의 18세기 멋진 저택으로 돌아오면 자동차를 두고 개와 동반하여 볼테르 가의 골동품 가게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과 정원 가꾸기는 그의 취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세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거의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마케팅, 광고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러한 성공 요건을 외면한 그는 오뜨 꾸뛰르가 허세의 대표 역할을 하던 시대에 데뷔해서 모드계가 변혁을 겪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성을 공고히 쌓아왔으며 1995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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